전차 / 컵 나이트 / 힘
카이가 레체를 본다. 언제나 승리를 보장받은 듯 당당한 낯을 본다. 푸르게 빛나거나 금빛으로 빛나는 낯은 햇빛을 받은 보석처럼 반짝이고, 막힘없이 구르는 바퀴 같은 언어들을 듣는다. 그는 언제나 카이보다 앞서나가고 있다. 그것은 무언가를 뒤에 버리고 간다는 의미가 아니다. 느리게 움직이는 것이더라도 받아들인다는 의미이다. 레체가 앞서나가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카이는 어떤 색색의 꽃들이 수풀 사이로 피어오르는 것을 느낀다. 완벽하게 잘 닦인 길이라거나, 그래서 가만가만 걸어도 쉽게 따라잡을 수 있다거나 하는 일은 전혀 없으나,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멈춤 없이 따라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다. 레체는 그런 어려운 일들을 단순한 말 한 마디, 표정 하나, 몸짓 하나로 가능하게 만든다. 카이에게 있어 레체는 거칠게 일렁이는 세상을 손짓 하나로 잠잠히 가라앉힐 수 있는 사람이다. 그는 쉽사리 이 여인의 발 밑에 앉아서 쓰다듬는 손길을 받는 사자가 되고 싶다. 혹은 해바라기여도 좋다. 사자의 갈기 매만지는 여인을 내내 바라보는 화단 위의 해바라기여도.
완드 5 / 절제 / 컵 10
레체가 카이를 본다. 불꽃 일렁이는 바탕을 아름다운 무늬로 가로막아 잠잠해 보이도록 만들 줄 아는 자를.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끝없이 투쟁해야 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정선을 맞추어 노력을 멈추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을. 그는 억압되어 있으나 레체는 그의 눈빛 안에 언뜻언뜻 보이는 정열을 안다. 카이는 자기 안에 있는 지식과 온전함을 끝없이 곱씹으며 가능성을 점친다. 실수할 가장 작은 가능성마저도 그의 눈에는 거대하게 보인다. 물병 속 작디 작은 티끌이 목마른 자의 갈증을 채울 수 없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모든 낯설음을 거쳐 어떻게든 한 모금 넘기는 순간, 그에게는 무엇보다 완벽한 보상이 주어지는 것과 다름없다. 레체는 그런 카이에게 일반적이지 않은 가능성을 쉽사리 찾을 줄 안다. 그 가능성은 안정된 집의 꼴을 하고 있다. 마당의 연못에선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나고, 두 사람은 시원한 음료르 마시며 손을 잡고 있다. 레체는 카이에게서 마주보는 가족의 형상을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