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타클 페이지 / 은둔자 / 소드 에이스
훼가 영일을 본다. 얕은 물가에서 뻐끔이며 숨을 쉬는 낯선 존재를 본다. 축축한 공기 중에서 꽃이 만개하면 꽃가루는 휘날리기는 커녕 바닥으로 추락한다. 영일은 세계에서 뚝, 뚝, 떨어지는 것들을 그대로 제 몸뚱이 위에 얹은 채 질식의 고통을 유영하는 인어다. 이방인이다. 자신만이 존재하는 무호흡의 세계에 머물러있는 자다. 영일은 불가능한 것에만 내도록 제 몸을 비벼댄다. 광활한 바다 한가운데 솟은 거대한 바위가 만물을 저주할 때, 그와 같은 자만이 직접 몸을 날려 그 바위를 긁어내려 든다. 굳건한 부리와 날개로 해결하지 못할 문제를 딛고 선 독수리는 영영 창공의 영역에만 머무른다. 그는 인간임에도 이러한 행동들을 선택하는 데에 여념이 없다. 훼는 그런 영일의 모습이 일견 인간성을 절삭한 꼴로 보인다. 완벽한 균형을 이루는, 척박한, 그러나 그 공허 속에 충만함과 날카로운 이성이 있다. 무無에서 나타난 가장 인간적인 비인간성. 훼에게 영일은 낯선 희망이다.
펜타클 2 / 펜타클 에이스 / 소드 페이지
영일이 훼를 본다. 불가능한 두 개의 세계를 양 손에 쥐고 어떻게든 균형을 맞추는 기인을 본다. 그는 각기 다른 세계의 각기 다른 귀중함을 응축시킨, 욕망의 산물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줄 안다. 동전에는 앞뒷면이 있고 달에는 밝은 면과 어두운 면이 있지만 훼가 다루는 것은 앞뒷면의 사이, 혹은 달의 회색 공간이다. 현명한 자는 언제나 기이한 존재로 배척당했고, 세상을 바꿀 힘이 있는 자는 언제나 문명에 살해되어왔다. 그러나 훼는 아직 문명에 살해되지 않았으니, 수없이 많은 가지를 뻗어 인간의 욕망을 끌어내어 독점하려는 것이다. 추악한 욕구와 모든 것을 아우르는 재력을 그러모아 제 손아귀 안에 두는 것은 놀랍게도 그것을 욕망해서가 아니라, 그것이 자신의 목적에 필요해서이다. 영일은 그런 훼의 목숨줄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지만, 동시에 이 바다에 곧 삼켜질 제물과도 같은 형상을 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인간적이지 않으나 도구적이지도 않다. 일종의 종교적 의식에 자신을 바칠 준비가 된 영일은 훼의 거침없음이 바다의 것임을 안다. 자신만이 존재하는 무호흡의 세계를, 훼는 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