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드 나이트 / 펜타클 퀸 / 펜타클 9
넬리 사미르 타르와트가 엘라인을 본다. 격류의 흐름을 결정할 수 있는 자의 가려진 얼굴을 본다. 그는 언젠가는 직접 발 벗고 나서 신화의 영역을 탐험하였으나 이제 그 시절은 아름다운 액자 속에 갇혔을 뿐이다. 엘라인은 인간의 것 아닌 차가운 투구의 겉모습으로 설명된다. 그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망설임 없이 거두면서도 겨울처럼 얼어붙어가는 주변을 신경쓰지 않는다. 누군가는 그의 모습을 보고 온 몸에 동상이 걸려 떨어져나갈 것이라 걱정하지만 정작 자신은 그러한 두려움에 눈썹 한 번 까딱이지 않는다. 겉이나 속이 소름끼칠 정도로 일치하는 자. 그런 엘라인을 바라보며 넬리는 이 자의 모든 현재가 자신의 것이 아닌가 착각하곤 한다. 지금껏 자신이 그의 곁에서 거절을 거부하며 웃었던 순간이나, 함께한 공기의 향내가 익숙해진 순간 따위가 저 사람의 지금을 만든 것이 아닌가 하고. 그러나 다음 순간 저 자의 얼굴에 소름끼치는 낯설음 숨겨져있다는 것 발견한다. 넬리 사미르 타르와트는 엘라인이 제 신화의 파괴자라는 것을 안다.
운명의 수레바퀴 / 컵 6 / 힘
엘라인이 넬리 사미르 타르와트를 본다. 머릿속 한가득 칼날이며 계절이며 환상이나 자유를 담은 인간을 본다. 그의 머리는 곧 빽빽한 언어들로 터져버릴 것만 같다. 이 인간의 혈관에는 푸른 물줄기가 흐르는 듯 하다. 그것은 바닷물 같기도 눈물 같기도 한데, 하늘을 수놓는 어둠과 사막의 별자리들에 비견할 만 하다. 넬리는 언제나 과거의 향수를 더듬는 자로 보이는데, 현재의 생활에도 그만큼의 에너지를 기울이고 있는 바람에 어느 순간에는 그리움 담은 잔들을 발치에서 걷어차버리는 것 같다. 잠시 다른 곳을 보았다 돌아오면 걷어차인 잔에서 쏟아진 그리움들이 현재의 옷자락을 한참 적셔 쉽게 움직일 수도 없게 만드는 것이다. 이토록 모순적이고 복잡한 현재에 선 넬리를 볼 때 마다 엘라인은, 이 인간이 종종 제 숨을 막히게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바다는 언제나 그렇지 않던가. 폐호흡을 방해하는 묵직한 물. 하지만 그 또한 인간의 방식으로 숨줄을 이어 공기를 들이마시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엘라인은 호흡줄을 붙들고 있다가도 가끔, 어두운 심해에서 그 줄을 놓아버린다. 공기방울이 뭍을 향해 피어오르고, 기도가 점차 막혀오는 동안 그는 넬리의 온도를 느낀다. 그러니 엘라인은 넬리가 제 과거의 복잡한 모순을 빚어낸 창조물과 같다는 것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