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약의 여왕 / 세 개의 물약 / 여덟 개의 물약
타이쥬가 이소베를 본다. 아름다움에 고정되어버린 그 유령 같은 형상을 본다. 노력하지 않아도 누구나 볼 수 있는, 분홍빛 뺨과 흐르듯 움직이는 몸짓들을 본다. 시나 이소베가 가진 사랑스러움이 어찌나 쉽게 남들에게 신성한 것으로 읽히는지 시바 타이쥬는 알 수 있다. 말로 전해지지 않아도, 들여다보는 사람만 알 수 있어도, 누군가 이소베를 들여다 볼 때 그 눈 안쪽에서 영락없이 반짝이는 흥미의 빛을 타이쥬는 기민하게 알아차린다. 하지만 그들은 타이쥬가 보는 것을 보지 못한다. 사랑스러움 안쪽의 공허함, 공허 옆의 절망, 절망을 놓아보내려는 노력이 얼마나 무용한지를 스스로 알아 영혼에 한 자 한 자 새겨넣는 이소베를 보지 못한다. 타이쥬는 자신이 그것을 볼 수 있다는 사실에 만족감을 느끼다가도, 공허의 두려움에 잠식된다. 그러한 감정들을, 이소베의 깊은 곳을 정렬한 것은 시바 타이쥬 본인이다. 그것을 부정하지도 수정하지도 못한 채, 사랑스러움 안에 파묻힌 문제들을 외면한 그는 뒤를 돌아 관성을 따른다.
절제 / 하나의 검 / 검의 기사
이소베가 타이쥬를 본다. 제 머릿속에 갇혀 세계의 아름다운 꽃밭을 환상으로 치부해버리는 소년을 본다. 어떤 꽃이든 베어내버릴 수 있는 결심을 본다. 아름다움은 타이쥬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의 날카로운 이성은 세계와 본인을 분리하고, 무엇이 가장 좋은 길인지 결정내려 그대로 행동한다. 타이쥬는 균형의 맹신자다. 생명을 최후의 보루로 붙들고 아슬아슬한 경계까지 검을 휘두른다. 다가오지 마라, 이 안은 우리의 공간이며 그렇기에 우리는 지켜질 수 있다. 이소베는 종종 그 검이, 이성의 논리들이, 타이쥬를 찔러버리는 순간을 상상한다. 두개골을 부수고 파고들어 시바 타이쥬의 공포를 까뒤집어 드러내는 순간을 상상한다. 세상을 '우리'로부터 격리하던 것이 '우리'로부터 타이쥬를 격리하는 순간을 상상한다. 짧은 안도감, 그리고 사라진 경계선에 대한 두려움이 소녀를 잠식한다. 타이쥬의 공포는 이소베의 공포가 된다. 이소베는 타이쥬가 '우리'를 지켜낸다고 믿는다. 소녀는 떼어낼 수 없는 기묘한 공생을 알아, 칼자루를 쥘 엄두를 내지 못한다.